비긴 어게인
비긴 어게인을 보았다.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한 내 인상은.. shape of you가 한국노래 듯 비긴 어게인도 한국 영화일 거라는 거였는데.
예상 외로 재밌었다. 비긴 어게인의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키이라 나이틀리의 원곡 버전 lost stars는 아무도 듣지 않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듣다가 결국 울면서 뛰쳐나가는 아담 리바인 버전의 lost stars가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는 점이다. 슬프게도 음악의 본질과 순수한 예술로서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영화가 헐리웃 자본과 만난 결과물, 그야말로 진정성을 잃어버린 기묘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ㅋㅋㅋ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상황들을 배제하고 본 비긴 어게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고 감정적으로 미묘한 부분들을 잘 캐치한다고 생각한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극중 마크 러팔로의 딸인 바이올렛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면 나름의 훌륭한 성장담이고 연애담이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울면서 저택을 뛰쳐나온지 하루만에(!) 마크 러팔로를 만나서 데모 테이프까지 만들게 된다는 점은 대단히 비현실적이지만, ㅠㅠ, 레코딩을 하던 중 러팔로와 함께 아이폰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온갖 음악을 서로 나눠 들으면서 교감하는 모습은 로맨틱할 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클럽에서 둘은 이어폰을 나눠끼고 그들의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춤추고, 지하철에서도 춤추고, 음악에 맞추어 풍경들을 세심히 관찰한다. 그러나 그 깊은 교감에도 불구하고, 키이라 나이틀리의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마크 러팔로는 절대 lover라는 자리는 내어주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장면은 엔딩 크레딧에서 키이라 나이틀리가 파랑색 원피스를 입고 한밤중에 마크 러팔로의 flat에 찾아가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아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급격히 실망하지만 이내 화제를 돌려 데모 테이프를 풀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데에서는 당돌함 한켠에 쓸쓸함이 남는다. 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찾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마지막 조금의 희망이 부서지는 것이 씁쓸하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
보는 동안은 그럭저럭 납득하기 때문에 괜찮지만. 돌이켜보면 와 이거는 너무 껴맞추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정교하지만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어려운 거구나... 하는 걸 느꼈고. 또 합주하는 사람으로서,,, 야외 합주+레코딩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 생겼다.ㅋㅋㅋㅋㅋ 즐거운 영화였다.